창세기 11장 1-9절 “인생들을 보러 오신 성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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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로 부름 Call to Worship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 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 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7-38)
예배 기원 Invocation
거룩하신 성삼위 하나님 아버지! 성령 강림 주일을 맞이하여 온 성도들이 충만한 은혜를 사모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약속하신 대로 저희들에게 보혜사를 보내 주셔서 영원토록 함 께 있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 예배하는 우리의 영안을 열어 주 사, 영광 중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으로 충만케 하사 우리 가 드리는 찬양과 기도에 기쁨이 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오며 예수 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이 주일의 찬송 Hymns
다 함께 주를 경배하세(12장)(통 22장) / 무한하신 주 성령(188장)(통 180장) 내가 매일 기쁘게(191장)(통 427장) / 죄짐에 눌린 사람은(536장)(통 326장) / 임하소서 임하소서(192장)
Stage 1. 벽돌을 굽자
연휴를 보내느라 모두 정신이 없다. 성령 강림 주일이 오는 것도 모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적지 않을 게다. 우리나라에 오월의 아픈 역사가 있었고, 그래서 이 주일을 청년 주일로 삼은 교단도 있습니다. 역사의 새 주인인 청년에 대한 교회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가르쳐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우리 인격의 스승은 누구이신가요? 신앙의 스승은 누구인가요?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시대의 우리 모습을 성삼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고 계실는지 궁금하다. 창세기 시대의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건설하는 성읍과 탑을 보시려고 친히 내려오셨다.
그때의 백성들은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3절)라고 하였다. 돌과 진 흙만으로 대를 쌓던 시대가 지나고, 그곳 시날 평지와 바벨론 지역에서는 이미 벽돌 굽는 방법을 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마를 이용하여 단단하게 굽는데, 진흙에 모래와 석회를 반죽하여 틀에 박아 구워 내는 방법은 문명의 진보를 통해 얻게 된 결실이다. 그리고 그 벽돌들을 역청으로 접착시켰다. 역청은 아스팔트 같이 기름처럼 끓어오르는 화합물이다. “자, 어떠냐! 우리의 기술 문명이 이쯤 되었으니까 이 벽돌로 하늘에 닿게 쌓아 보자.” 아마 이렇게 생각했던 것으로 보 인다. 문명과 기술을 자랑하려 했던 것이 바벨탑의 내면적 바탕이다.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사람들은 점점 하나님을 잃어버린다. 보라! 벽돌과 역 청만 있어도 하나님과 한번 대결해 보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로봇을 부리고 우주로 여행하게 된 시대인데 하나님을 향한 교만이 어찌 없을까. 하나님을 함부로 언급하며, 그 섭리를 의심하거나 맹렬히 공격하기도 한다. 이런 교만과 이기주의는 신앙의 위기를 불러오고 사회와 가정을 병들게 한다.
Stage 2. 이름을 내자
사람들은 또 말하기를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4절)라 하였다. 탑을 세우는 목적이 바로 ‘이름을 내는 것’이었다. 명예와 허영을 마치 하늘만큼 높이 내세우려 했던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바벨탑의 벽돌마다 사람들이 각각 자기 이름을 새겼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이름이 하늘에 닿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상상에서 비롯된 학설이다.
이 시대에도 자기 이름을 내세우고 싶은 사람들이 즐비하다. 작년에 있었던 각종 선거들은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많 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원하는 내 이름! 그러나 이 이름이 진정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이름으로 남게 될는지, 그렇지 못하고 부끄러운 이름으로 기억될 것인 지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궁극적으로 주님께서 기록하실 생명책에 내 이름 석 자가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Stage 3. 흩어지지 말자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4절)라는 말을 들어 보라. 세력을 형성하고 집단으로 뭉쳐 절대 흩어지지 않겠다고 한다. 이것이 바벨탑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사고방식이었다. 이런 사고는 형태를 바꾸어 지구상에 여전히 존재한다. 강력한 사회주의 체제를 실현하겠다고 연방으로 뭉쳐 세계지도를 벌겋게 물들였던 소비에트 연방이 모두 해체되었다. 그와 다른 각도에서 유럽이 EU라는 이름 으로 결속하고 있으나 그 집단의 힘도 처음 기대만큼 든든하지 못하다. 북한은 핵을 보유함으로써 지상에서 흩어지지 않겠다는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핵무기를 가지고 언제까지 흩어짐을 면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둘로 갈린 이 나라 를 긍휼히 여기셔서 은혜로운 결과를 내려 주시기를 기도한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은 사람들은 그 은혜 안에서 흩어짐을 면하게 된다. 독재 정권으로 흩어짐을 면해 보려는 나라들도 있고, 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억누르 는 국가도 있다. 권력층의 부패를 다른 눈가림으로 감추려다가 결국 무너지고 만 국가도 있다. 흩어 버리기도 하시고 다시 모이게도 하시는 분은 오직 전능하신 성삼위 하나님이시다.
Stage 4. 오시는 것이 싫다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쌓고 있는 인간들에게 내려오셨다. 문명이라는 벽돌을 쌓으며 하늘까지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인생들을 보러 오셨다. 그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을 보시러 직접 임하신다. 권력의 현장 과 그에 저항하는 민중의 현장에도 찾아오셔서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 거짓말 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시고, 굶주려 고통 받는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도 친 히 보신다. 그런데 성실한 어린이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오시면 반갑고 자랑 스럽지만, 잘못을 저지르고 있던 어린이는 부모님 앞에서 감추고 당황해 한다. 하나님께서 오시는 것이 무척 싫은 사람도 있다.
오셔서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이 옳지 못하면 엄히 벌하신다. 인간이 계획했던 욕심의 탑을 무너뜨려 버리기도 하셨다. 순식간에 위에서부터 ‘쿵’ 하면서 넘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무너뜨리셨을까? “자, 우리가 내려가 서”(7절). 여기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복수로 표현했다. 성삼위 하나님을 의미하 고 있는 것이다. 성삼위께서 오셔서 언어를 혼잡케 하시고 온 지면에 흩어 버 리셨다. 언어를 혼잡하게 하신 것이 인간에게 내리신 벌이었다. 그렇게 되니 서 로 힘을 모아 일할 수 없게 되어 탑은 자연히 무너지고 말았다. 바벨은 Gate of God, ‘신의 문’이라는 뜻이었다는데, 지금은 영어로 babble, 곧 지껄임이나 수 다, 또는 혼란한 소리라는 의미가 되었다.
어떤 좋은 일 앞에서 여러 가지 말을 가지고 비난하거나 공격하며 비꼬는 행 위, 저주의 독설을 하는 것은 바벨의 벌에 해당한다. 트집이나 고약한 말로 원 수를 맺으면 아름다운 행위는 중단되고 세상은 혼돈의 상태로 들어간다. 상대 방을 칭찬하기는커녕 흠을 잡으려고 갖가지 말들을 지어내는 행동들이 하나님 의 세계를 불평의 땅으로 바꿔놓고 말았다. 어떤 목사님은 “교인불평록”이라는 검은 표지의 노트를 만들었다. 교인이 찾아와 불평과 비난의 말을 시작하면 목 사님은 말없이 불평록에 기록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일들을 정식으로 문제 삼 겠으니 잘 기록되었는지 어떤지 사인을 해주도록 부탁한다. 그러면 그 교인은 무슨 기록까지 남길 일은 아니라며 그냥 폐기하자고 말한다. 지금도 그 불평록 은 빈 노트라고 한다.
Stage 5. 우리를 어떻게 보실까?
하나님께서는 벌하려고만 오시는 것이 아니다. 성삼위 가운데 성자 예수 그 리스도께서는 성육신으로 인생을 구하시려 이 세상에 오셨다. 구원하러 내려 오시는 은총의 주님이시다. 우리를 보러 오셨을 때 구원의 주님을 맞아들일 준 비를 갖추고, 깨어 졸지 말고, 문을 걸어 잠그지 말고, 기쁨으로 맞이해야 한다.
보혜사 성령님께서 영으로 우리에게 오셨다. 평안을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주님께로 이끌어 주시고, 능력 있게 하시기 위하여 여기 오셨다. 인생을 보러 오 신 성령님 앞에 자랑과 오만, 불평의 말들만 늘어놓고 있을 것인가? 성령님께서 과연 우리를 어떻게 보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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